[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고통 받는 이에게 다가서자”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교황의 미사. 존엄성을 되돌려주기 위해, 고통 받는 이에게   다가설 것.

“가엾은 마음”, “다가서다”, “돌려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엾은 마음을 가지는 “은총”, 곧 다가서는 “은총”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존엄성”의 자리로 사람들을 “손잡고” 이끌어주는 “은총”을 주시도록 주님에게 기도했다.

교황은 나인이라는 고을에 사는 과부의 죽은 아들이 부활하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날 루카 복음(7,11-17)에서 실마리를 잡으면서, 구약성경 안에서 어떻게 “노예들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과부들, 고아들, 이방인들, 외국인들인지 설명했다. 그들이 “사회 안에” 자리잡도록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요청이 성경 안에 계속 나온다. “세밀한 것을 바라보시는” 능력을 갖추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 바라보시기” 때문에,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가엾은 마음은 얽혀 드는 감정이고, 모든 것에 휘말리는 마음의 감정, 내면의 감정입니다. ‘고뇌’의 감정이나 혹은 ‘안 됐군,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느낌과는 다릅니다. 네, 아닙니다. 결코 같은 감정이 아닙니다. 가엾은 마음은 빠져드는 겁니다. ‘함께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엾은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과부와 어떤 고아에게 마음이 동조되셨습니다 (...) 그냥 두십시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매일 일어나고 발생하는 비극일 뿐입니다. (...) 아닙니다. 그분께는 그 과부와 그 죽은 고아가 자신을 뒤따랐던 군중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의 마음이, 그분의 내면이 동조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연민을 통해 이 사건에 휘말리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은 “가까이 다가서도록” 부추긴다는 점에 교황은 주목했다.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에게 선뜻 다가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가서는 것과 현실을 건드리는 것, 혹은 만지는 것.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엾은 마음을 가지셨다’는 것이 첫 번째 단어였고, ‘다가가셨다’가 두 번째 단어입니다. 그런 다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에 봅시다. 나는 내 갈 길을 계속 가겠소’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젊은이를 붙잡고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15절). ‘돌려주다.’ 세 번째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려주시기 위해, 사람들을 제 자리에 두기 위해 기적들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을 통해 행하신 일입니다. 가엾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가엾은 마음을 가지셨고’, 당신 성자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셨으며’,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자녀라는 존엄성으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재창조하셨습니다.”

“그분께서 행하신 대로 똑같이 행하라”는 것이 교황의 권고다. “씻지 않아서”, “냄새 나고”, 더러운 사람이 있기 때문에, “멀리서” 그들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TV뉴스나 신문의 표지 기사를 보면서, 비극적인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 그러나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고, 그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군인이 되며, 그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노예생활을 하고, 그 나라에서는 (...) 오, 그 어떤 재앙입니까! 불쌍한 사람들 (...) 페이지를 넘기고, 소설로 넘어가고, 그 다음엔 드라마로 넘어갑니다. 이런 자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질문은, 모든 이들에게 관한 것이지만, 저에게도 해당됩니다. ‘나는 가엾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기도할 수 있는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런 일들을 볼 때 (...) 내면이 움직이는가?’ 마음이 그 사람들과 같이 고통을 겪는지, 또는 괴로움을 느끼고,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또 그렇게 생각하는지 (...) 만일 가엾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은총을 구하십시오. ‘주님, 저에게 연민의 은총을 주십시오!’”

“중재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가족의 삶’으로,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결론적으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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